문씨유래 ≫ 문씨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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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남 거창군 가북면 용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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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향선조 |
모계공(茅溪公) 諱 위(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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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사일 |
음력 3월 하정일 |
| 교통안내 | 88고속도로이용-가조나들목-용산부락 방향 |
| 주변관광지 | 거창은 산이
높고 물이 맑아 등산객이 많고 유명한 사찰도 많습니다. 가조의 백두산온천은 물이 좋아 관광객이 반드시 들리는 곳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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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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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3년에 김치경(金致敬),
정기진(鄭起震), 윤영남(尹英男) 등이 사당건립을 발의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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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마을의 지방도의 왼편에 송림이 우거진 공원이 보이며 다리를 건너 우회전을 하여 수량이 많고 물이 맑은 하천옆의 길을 따라서 100m 정도 가면 도로옆에 있는 서원의 대문을 지나면 자연석으로 꾸민 화단과 자그마한 마당을 가진 강당이 있으며 강당 뒷편에 실신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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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정구 선생의 문인으로 1592(선조25) 임진왜란때 왜군과 전투중 의병대장 김면의 병사후 의병대장을 맡았고 김옹(부재학), 류성용(재상)의 천거로 동목교관이 되어 선고감주부 감찰을 역임하시다가 광해군 즉위 후 낙향 인조반정후 고령현감을 사임하고 낙향하다 가.출생과 성장
6세때 독서를 시작하여 9세에는 상서(尙書)의 뜻을 알았다.
13세때 조부공(祖父公)의 상(喪)을 당하였는데 학산공(學山公)이 시묘(侍墓)하는 데서
영호(營湖) 윤경남과 같이 공부하였다.
○ 19세 : 남명(南冥)선생을 방문하였고, 장례(葬禮)때 참석하여 예(禮)를 배웠다.
○ 21세 : 산청의 덕계선생을 방문하여 역학(易學)을 배웠는데 경의지학(敬義之學)의 근본을
얻었다. 7월에 덕계를 제사하는 제문(祭文)으로 분명이 진동하였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께 50년동안 가르침을 받았는데 많은 영향을 받았고,
정선생 또한 여러 제자중 으뜸으로 생각하였으며 후에 한강언행록(寒岡言行錄)을 지었다.
○ 38세 : 6월에 영남유생을 대표해서 최수우(崔守愚 이름은 최영경) 신원소를 지었다9월에는 팔송정(八松亭)에서 현감 이석명의 명으로 생도를 교수함. ○ 39세 : 임진년 창의하여 김면(金沔, 호는 松庵)을 대장으로 추대하여 지례, 병암, 고령, 성주, 합천     등지에서 왜적을 방어하여 진양일로(晋陽一路)와 주민을 구제하였다. ○ 46세 : 용산에서 모계리로 이거하다 호(號)의 계(溪)를 '谿로 바꿈은 스스로를 낮추고 경계함이었다고 한다. ○ 50세 : 의사 이형(李亨), 장응인(張應麟), 효자 최발전(崔潑傳)을 지었다. ○ 51세 : 5월에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다. 동강(東岡) 김우옹의 추천에 의해 6월에 부임했다. 당시 문인 모의자(慕義者)는 사우도를 참조할 것. 52세에 계공랑(啓功郞∼종7품)에 승진 ○ 52세 : 선무랑(宣務郞), 선교랑(宣敎郞) 종6품에 승진. 선무원종공신 삼등에 봉해지다. ○ 53세 : 선공감주부(繕工監主簿) 12월, 서애 유성룡(柳成龍) 추천으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에 임명 ○ 55세 : 승훈랑(承訓郞), 승의랑(承義郞), 봉훈랑(奉訓郞 종5품), 봉직랑(奉職郞)에 승진 ○ 56세 : 광해군 1년, 벼슬을 버리고 귀향. ○ 61세 : 동계(桐溪) 정온(鄭蘊)은 제주도 대정에 안치, 윤경남이 운봉 현감(縣監)을 하다가 사망하였다. ○ 62세 : 문인 조직(趙稷)이 광해의 폐륜행위를 상소(上訴)하여 남해로 유배되고 선생도 무고(誣告)되어 화(禍)를 당할 뻔 했는데 배대유(裵大維)의 변호로 무사하였다. 오사호(吳長)는 정온(鄭蘊)을 변호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토산(兎山)으로 유배됨. ○ 63세 : 서계서원(西溪書院) 건립에 전력함. ○ 64세 : 오사호(吳思湖)는 유배지에서 사망, 선생은 삭명사판(削名士版: 모든 벼슬이 삭탈)됨. ○ 65∼66세 : 허목(許穆∼眉), 조경(趙炯∼龍州), 이진철 등과 서신 왕래, 상봉 등이 빈번하였다. ○ 67세 : 한강선생 사망(광해 12년), 위패(位牌)를 모시고, 대곡(大哭)하고 제문(祭文)으로 조의하였다. ○ 69세 : 연평답문절요(延平答問切要)를 초록(抄錄)하였다. ○ 70세 : 인조왕 1년 4월에 조산대부(朝散大夫 종4품) 고령현감에 임명되었다. 6월 부임 -> 11월 사임. ○ 75세 : 도산서원(道山書院) 창건을 발의함. ○ 78세 : 덕계선생 행장(行狀)을 지었다. 12월 24일 별세하시다 ○1644년 공의 행장(行狀)을 허목(許穆)이 찬술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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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생(先生)의 스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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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생(先生)의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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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선생(先生)의 이기문제(理氣問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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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선생(先生)의 왕도론(王道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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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선생(先生)의 출처지도(出處之道 : 벼슬하는 선비들의 처신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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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선생(先生)의 교육과정(敎育課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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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선생(先生)의 건강관리법(健康管理法)고 취향(趣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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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계선생 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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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日記)는 선생의 개인 일기인데 161쪽 중 98쪽으로 선조 22년에 시작하여 거창, 합천, 고령, 성주, 현풍 등지의 사람들과의 교우관계가 소상하게 나타나 있다. 이 지역 역사고찰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송암의 의병활동 및 전란관계가 아주 간단 간단하게 일기까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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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계선생일기(茅谿先生日記) 해제(解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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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계선생의 평론(評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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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장(行狀)에 나타난 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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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명(墓地銘)에 나타난 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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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輓詞) 및 제문(祭文)에 나타난 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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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상의 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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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계선생 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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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문집(文集)이 이루어진 것을 몰세(沒世 ;1631년) 후 약 200년 후인 기축년(己丑年)이라고 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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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관광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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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은 덕유산으로 전라북도와 경계하고 함양에 이웃하여 1000m가 넘는 산이 20
여개가 모여있는 경상도의 오지여서 물 또한 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