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연 서원

장연서원(長淵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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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개요

장연사상량문

장연사사실기

악강당상량문

악강당기

빙호루기

사진모음

오시는길


서원개요

소재지

전남 나주군 남평면 풍림리 720번지

배향선조

◎시조 무성공 諱 다성  ◎ 2세 경정공 諱  공유  ◎3세 충숙공 諱 극겸  
◎4세  순평군 諱 유필  ◎10세 충선공 諱 익점

제향일

(음)9월 중정 11시

서원

홍살문(입구)을 지나면 헌성비가 있는 빙호루(서원의 정문)이다. 오른편 문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오현선조 사적비(1975년 건립), 동제에 악강당과 오사제가 있고 건너편이 서재이다.양춘문(신실문)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오현(다성 공유 극겸 유필 익점)을 모신 상덕사와 서쪽에 충선공 영정당이 있다

시조단

장연서원에서 건너보이며 직선 거리는 300m 정도이나 도로를 따라가면 500m 정도이다. 장자못은 매립되어 주차장을 만들었고 시조단 앞에는 석물들을 세웠고 오른쪽에 산산제단이 있다

문암각

팔각지붕의 문암각은 2001년경 건립하고 2004년 단청을 마쳤으며 안에는 문암이 있다





 

장연사 상량문

엎드려 생각컨데 옛터를 버리지 못함에 후손들이 백세가 지나도록 흥성하고 감덕을 반드시 제사드림에 사림들이 삼광선생 존모하여 영을 모시었네. 선세의 막훈 추언하여 새로운 제도 꾸몄더라. 가만히 생각컨데 무성공 문선생은 천지의 기운이 어리어 신인이 내려오심이라. 옛적 신라왕이 총애로 벼슬을 더하였더니 대개 그 영명한 자품이 기하에 표출됨이라. 비로소 동방에  문자의 성을 얻었으니 석함의 붉은 글씨 명확히 징험할 것이요. 남평이 악강을 고을 임을 알겠으니 소상히 여지승람에 실렸더라.
기린과 봉의 태어남이 진실로 다른 짐승과 다르니 사람들 상서로운 징조라 일겉고 산천의 기운이 모여 호걸스런 영웅이 됨에 세상에서 명문 우족이라하네. 처 砥石의 언든 바라봄에 효두의 의식 궐하였고 많은 충진을 이미 겪었음에 행인들의 손짓함 얼마나 많았던가.
비세우고 단설치함이 이루지 못함에 누차 후손들의 차탄을 일으켰네. 연이나 여러 의론 일치못하여 3년에 집세움 허송하였고 몇 사람이 힘을 모으니 문득 하루만에 공을 이루었네.
오직 이 일이 실로 마당함이라 이러므로 이루기 심히 쉽드라.
환연히 집 짓은 후에 밝은 영령이 일찍 이에 있었음 보겠고 우러러 향햐 드리는 앞에 성의있는 바를 알겠더라. 선생의 여경을 아득히 생각해 보니 후손이 창성하여 어진이 많은지라 경정공 같은 분 있어 사특함 물리치고 충숙공이 뒤를 이어 사기를 찬하였고 순평군의 높은 훈업이 후손에도 그 근훈끼쳐 충선공의 현명함 조선의 업적이 있드라.
이에 뿌리가 깊으면 가지가 무성하고 근원이 맑으면 지류가 맑지 않을 수 없음을 보겠드라.
이에 네 군자를 추향함에 엄연히 오선생을 함께 제향 드립니다.
조문이 엄숙함에 산은 더욱 높고 물은 더욱 깊으며 집이 아늑함에 청죽과 솔처럼 조밀하더라.
제손이 존모하는 마음 붙였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으랴. 많은 선비들 제향의 의식행하니 아! 그 성대하여라. 상량목 들어 올림에 칭송의 노래 이에 울려 퍼지네.
동을 보니 신인이 석함속에서 솟아나셨더라. 후에들 백세에 사당을 새로 지으니 못위에 지금까지 기이한 기운 붉더라.
남을 보니 천마봉 높다랗게 하늘 속에 솟았구나. 우러러 보아도 더욱 높아 잡고 오를 수 없으니 엄엄한 기상 옛부터 이야기 하네.
서를 보니 봉황이 천길 구름끝에 노는구나. 고색 빛나는 문장들 그 후에 창성하니 창창히 줄지어 당에 오르는 구나.
북을 보니 신이 서울이 어딘가 기리 탄식하구나. 영령이 어둡지 않을진데 응당 계실 것이니.녹후를 깨끗이 씻어 옛시절 돌이키리.
위를 보니 늙은 괴화 무성한 향나무 울창히 서로 향하였구나. 네 현인이 계셔 함께 배향하니 조손이 일체로 함께 제 올림 마땅하구나.
아래를 보니 띠를 두른 듯한 긴 강물 쉼없이 흐르구나. 광번을 캐어 제사 올리니 많은 선비들 분주하구나. 엎드려 원하옵건데 상량한 후에 춘추로 제향드림 쇠함없고 사우가 기리 보본되어 가을 국화 봄난초는 향기로움 함께하여 제사를 보답하고 봉의 나래 린이 발꼽은 마땅이 자손에게 상서로움 보이소서.
 

 

장연사 사실기(事實記)

장흥 고제요(長興 高濟堯) 삼가 기록함

대개 인물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는 오랜 옛적부터 신명(神明)의 탄강이 있었다 상(商)나라의 고신씨(高辛氏)의 후비(看妃) 간적(簡狄)이 현조(玄島)의 알을 머금어 설(契)을 낳은 것과 주(濁)나라의 강원(姜源)이 상제(上帝)의 발자취를 밟고 후직(后稷)을 낳은 것 등은 천지가 배태(雁胎)하여 화육(化毓; 천지 자연이 만물을 자라게 함)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박석김(朴昔金) 삼성이 계림(鷄林)의 알속에서 낳은 것과 고부량(高夫良) 삼성이 한라산(漢拏山)에서 나온 것은 오랜 세월의 기형(奇形)과 이적(異跡)으로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져 여지승람(輿地勝覽) 같은 책에 실려 있는 것이 한두 곳 뿐 아니다.

이 남평문씨(南平文氏)의 시조 역시 그 일례에 속한다. 신라(新羅) 때의 무성공(武成公)은 남평문씨(南平文氏)의 시조로서, 남평군 지석(砥石)강 동쪽 장자(長者) 못 언덕 바위 위의 석함(石函)에서 탄생하였다.

나이 겨우 5세에 글과 사상이 자연 통달하고 무예와 지략이 뛰어난 재주가 있는 등 사물의 이치(理致)에 막힘이 없었다. 그러므로 문자(文字)로서 성(姓)을 삼고 다성(多省)이라 이름한 것이요 그 명철함이 해와 달 같고 별 같다 하여 삼광선생(三光先生)이라 호를 삼은 것이 이 때문이다.

이로부터 후손들이 번창하여 널리 팔도에 살았으며, 고려말과 조선조 초기에 명공거경(名公巨卿)과 충효문장(忠孝文章)이 역사에 끊이지 않았으니, 경정공(敬靖公)의 불교(佛敎)를 배척함과 충숙공(忠肅公)의 임금께 극간한 정절(靖節)과 효혜공(孝惠公)의 충훈도덕(忠勳道德)과 삼우당(三憂堂) 선생의 도학을 편 공덕 등 후예들의 세세로 훈업(勳業) 세운 것이 소상히 국사에 실려 있다. 그 자손중에 덕이 높은 이와 어진 선비가 계속 이어나와 과거에 급제하는 이가 지금까지 끊어지지 않았으니, 만약 그 처음에 뭉치어 화육된 원류가 깊고 또한 길지 않으면 어찌 능히 이와 같으리오.

아, 국내의 명문 집안들을 볼진대, 각기 그 선조를 위하여 비록 지팡이 짚고 유람(遊覽)한 곳일지라도 표방(標榜)을 구비하여, 보고 느낌을 잘하여 놓았거늘 슬프다! 문씨 초조(文氏初祖)의 유허지(遣虛地)가 천여년 동안 잡초만 무성한 채 한 조각 문암(文巖)만이 풍우에 마멸되었을 뿐이니, 비단 후손들만의 부끄러움이 아니라 또한 행인들의 주시함이 아니었으리오? 크게 존경하고 사모할 옛터에 비를 세우고 제단을 설치하는 일이 아직까지 미치지 못하더니, 계해년(1923)부터 종론이 함께 일고 여러 의논이 일치되었었다. 이에 삼광(三光)선생의 후예 병구(炳九) 인환(仁煥) 치호(致晧)가 이 일을 맡아서 삼문(三門)의 사당을 지어 삼광선생 이하 경정공(敬靖公) 충숙공(忠肅公) 효혜공(孝惠公) 강성군(江城君) 제현을 함께 모시니 도내 유림들이 말하길 이 사당을 비록 본손들이 창건하였으나 존봉(尊奉)하며 유지하는 길은 실로 사림(士林)에게 달렸다 하므로 사실(事實) 한 통을 이상과 같이 삼가 기록한다.

효혜공 원문은 순평군(順平君)이다. 순평은 고려말 공양왕 2년 화순(和順) 감무(監務)를 겸임 시켰을 때의 지명이므로 출자지명(出自地名)에 의한 봉군(封君) 제도에 어긋나며 고려 중엽은 봉군제도가 없고 훈작제도가 시행되었기에 시호로 바꿔 기록하였다

 

악강당(嶽降堂) 상량문

* 악강은 신(神)이 신령한 기운으로 귀인(貴人)을 낳게 함을 축하하는 말
장자산 장자못은 에도 이와같고 지금도 이와 같더라. 아름답고 웅장하게 위채 아랫채 지었더라. 수림들 덕을 앙모함에 의절을 다 갖추었네 밝게 생각건대 무성공 문선생이 영평의 대암석에서 탄강하셨음에 공중에 솟은 주기는 상서로운 해와 구름이 아님이 없고 일면의 붉은 글씨는 모두 이 기이한 모양 이상한 자취였네. 일세에 공훈 세워 나라에 큰 명위 떨쳤고 삼광이라 호 내리니 밝기가 일웡처럼 빛나더라. 천년간을 아직 세사 올리는 예 없었으니 많은 선비들 어찌 경모하는 마음 금하랴. 맞추어 협모함에 묵묵히 마음속에 계힉세우고 여기 집지음에 문득 안전에 우뚝솟음을 보겠더라. 중앙을 택하여 대청이 통하게 하여으니 여러 생도들 강습할 곳 갖춤이요 그 곁으로 방실을 설치하였으니 춘추 제향때 재계하는 곳이라. 비단 공직만 함께할 뿐 아니라 후손들의 성력에 나온 것이다. 제현을 배향함에 사방이 우러러 보며 성복하고 영열들 앎이 어둡고 막막한 구천에서 감격하였네. 양양이 오르심에 밝게 내림하시는 이치 가히 징흠하겠고 울울한 아음 펴었으니 신인의 화합 어긋나지 안았네
이 진실로 백대에 함께 칭송할 일이니 어찌 일방의 숭암함 뿐이리오.
가을에 예 겨울에 시 배우는 선비들 줄지어 모이고 총죽과 벌송처럼 치밀함은 이 집의 질서 정영함 노래하네. 장노들 모여 락승함에 시를 창화하고 장인들 명하여 일을 마침에 상량올리더라.
어량처 동을 보니 푸르고 푸른 산색은  창공에 솟았구나. 저와 같이 의연한 큰 공업 이우었음에 천년이 흐른 이 나라에 도풍이 남았더라.
아량처 서를 보니 요망한 기운 필연코 바다 서쪽으로 통했구나. 봉황은 덕을 보고 천길 촐이 날으니 구조와 더불어 썩은 먹이를 다투지 않네.
어량처 북을 부니 띠 두른 듯한 긴 강물 쉬지 않고 흐르는구나. 우리 도의 참 근원이 이에 있음 볼 것이니 인으가 만이 쇠퇴함 못내 찬탄하네.
어량처 상을보니 지금도 추상하며 잊지 못하더라. 비론이 또한 다시 빛날 징조있으니 기도가 어찌 능히 상실됨 있으랴.
어량처 하를 보니 기장과 벼가 충실히 전야에 가득하구나. 제수를 올리니 정결하고 풍성하니 정성드려 제사올림 공경히 하더라.
엎드려 원하옵건데 상량한 후에 산수가 굽어 살피고 기신이 묵묵이 도와서 박부는 돈후해지고 유부는 강직해 짐에 어찌 비단 백세에 존모함이 무궁할 뿐이리오. 그 쉬를 외우고 그 서를 읽음에 가히 평생에 배운 바를 저 버리지 않으리라. 

악강당기(嶽降堂記)

민경호(聞京鎬) 지음-자헌대부 장례원 향원임(資憲大夫 掌禮院 鄕原任) 규장각 직학사 (奎章閣 直學士) 
* 악강은 신(神)이 신령한 기운으로 귀인(貴人)을 낳게 함을 축하하는 말

남평 고을의 남쪽 문암은 삼광(三光)선생이 탄강하신 곳이다. 옛적 선생이 처음 탄강하실 때에 석함(石函)의 상서로움이 있었으니, 진실로 범상한 일이 아니다. 고려에 벼슬하여 경상(卿相)의 지위에 올라 후인들을 열어 주었으므로, 예천(醴泉;단 샘물의 이름)의 근원과 영지(靈芝 : 불로장생초) 뿌리 같다.
그러므로 세세로 명신석학이 이어나서, 경정공(敬靖公)의 출납(出納)에 진실하고 불교를 배척함이며, 충숙공(忠肅公)의 국사(國史)를 감수하여 정(鼎: 3정승을 뜻함)에 새길 공(功)이 있음과 효혜공(孝惠公)의 청직(淸直)한 절의로 호종의 공이 현저함과 삼우당(三憂堂) 선생의 성리학을 크게 밝혀 이전의 성인을 잇고 내학(來學)을 열어 준 위대한 공열(功烈)과 아름다운 역사에 빛나고 빛나는 후손들이 서로 이어남에 동방의 벌열(閥閱)한 집안을 말하는 자 문씨보다 더함이 없을 것이다.

그 본래의 근원을 미루어 볼진대, 어찌 삼광선생의 유음(遣음)이 미친 것이 아니리오. 지금까지 자손이 번창하고 벼슬이 빛나니 오, 번성하여라. 역대로 포상(衰賞)이 모두 지극하여 혹 묘정(廟庭)에 배향하고 혹 서원에 봉향되기도 하였으나, 
이곳 무성공이 강림한 유허(遺壇)를 돌아봄에 아직까지 제향 드림이 없었다. 풀만 무성하고 초동과 목수들을 금하지 않아 이끼에 파묻혀 행인들이 처량해 하니, 하물며 그 자손들의 추원(追遠)의 감회가 진실로 어떻겠는가? 이번에 문씨 제현들이 옛 자취를 기록하여 기리 세상에 전할 바를 도모하고, 이에 재실을 세워 첨앙(疇仰)하는 마음을 부치었는데, 해마다 제사 올려 보본(報本)의 정성을 펴며 함께 오선생(五先生)을 봉향하여 일묘(一廟)의 제도를 이루었으니, 비록 의(義)에 일어난 것이요 실로 예에 합당함이다.

사당을 세워 예배 드릴 곳을 갖추고 방을 만들어 재계할 곳을 만들어 제향을 드리는 날, 줄지어 뜰을 바삐 다니며 분향 제주하였다. 이때 개연(慨然)히 음성을 들은 듯하고 어렴풋한 모습을 본 듯하여, 천재(千載)의 멀고 아득함 알지 못하고 황홀히 사당에 올라 문안드린 듯함에 효제(孝悌)의 마음이 저절로 울어나는지라 사당 이름을 악강(嶽降)이라 하였다. 후세들로 하여금 이름을 돌아보며 의를 생각하여 쇠함없이 이어가게 함이니, 어찌 오직 문씨 한 집안의 다행함일까 실로 이 선인(善人)을 낳게 하는 지극한 뜻이다.

이제 그 후손 병구(炳九) 성호(誠浩) 인환(仁煥) 지수(址洙)치호(致浩) 종구(鍾龜) 제씨가 그 당호의 뜻과 집 세운 시말 일부를 기록하여 나한테 그 사실을 기록하여 기리 전하게 하니, 그 존조(尊祖)의 정성이 평상인 보다 특출한지라 내 듣고 기쁜 마음 뛰는 듯하여 분연히 붓을 잡아 기록한다.

 

빙호루기(氷壺樓記)

장흥 고광선(長興 高光善) 삼가 지음
-빙호란 얼음을 넣은 항아리로 맑고 깨끗한 마음을 비유한다-

아, 공경스러워라. 영평(永平: 남원의 옛지명)의 장연사(長湖祠: 현재의 장연서원)는 삼광(三光) 문 선생(문다성)을 모신 곳이니, 지난 갑자년에 창건하였다. 경정공, 충숙공, 효혜공, 충선공 네 분 선생을 함께 배향하니 3년 후 병인(1926)에 바깥 삼문이 이루어졌다. 
문씨의 장로(長老)들이 나에게 그 이름을 묻거늘 내가 빙호문(氷壺門)으로 하라 하였으니, 대개 장자(長者) 못물이 가득히 넘실거리는데 빙옥(氷玉) 같은 가을달이 천재(天載)에 비침을 인용한 것이다. 아, 선생들께서 고려 때에 이단(異端)을 분별하고 사설(邪說)을 물리쳐 우리 동국(東國)으로 하여금 소중화(小中華)가 되게 하는 시발이 되었음에 이름이 있는 곳이다. 그 실상을 서로 믿을 만하다. 선생의 후손들이 이 땅에 가득하나, 오직 이 서석산(瑞石山) 아래 문태성(文泰聲)이 나이 팔순이 되었어도 곤궁하고 외로워 의지할 곳 없으면서 추원(追遠)의 본성만은 늙어도 더욱 돈독하여 단독으로 돈을 내어 기와를 덮었다. 이는 그 천재의 가을달이 지금도 빙옥(氷玉) 같음이 아니겠는가? 이들 후인들로 하여금 뒤에 수호하는 법도를 삼게 하면 이 누각을 보수하는 길이 용이하리라.

 

사진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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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서원

현판과주련

2009년 향사

2005년 향사

2002년향사

충선공영당제사


장연서원

전경

홍살문(입구문)

빙호루(서원 대문)

공적비와 헌성비(빙호루 왼쪽)

상덕사(장연서원 신실)

신실입구문

2008년 도비 지원으로 깨끗하게 단장한 담장들

   

시조 무성공위패

경정공(2세공유)위패     효혜공(5세 유필)위패

충선공(12세 익점)위패    충숙공(3세 극겸)위패

 

성금비

옴겨서

모은

비석

옮겨 모은 비석을 구경하는 일가님들

서원 증수 기념비

 

현판 주련 사진

 

양춘문

상덕사

신실입구

 

양춘문2

양춘문1

상덕4

상덕3

상덕2

상덕1

 

악강8

악강7

악강6

악강5

악강4

악강3

악강2

악강1

오사제1

오사제2

오사제3

오사제4

오사제5

오사제6

오사제7

충선영당

 

 

 

 

 

 

2009년 향사

향사전 시조단과 문암각 참배

옮긴 비석을 구경하는 일가님들

본손의  행사준비

유림의 축문 쓰기

유림과 본손의 인사

접수처

유림의 접대

일가간의 상견례

집사

참제자들

진설

준비된 술독과 술잔

집례 선취 재배

집례

참제자들

초헌례

엄숙하게

진행되는

향사

사신재배

축문

음복

집사자 재배

집례 재배 퇴위

술은 권하는 맛이지

일가간의 담소

 

2005년 향사

집례

삼상향

사준

진설확인

축문

독축준비

헌관들의 식사

제사뒤의 음복

성금 접수처

사천일가님

부산지역 참석자

 

2002년 향사

오현제 향사 진설

기념촬영(칠순고문, 기호감사, 경동부회장)

기념촬영(제주 및 부산종친회)

 

충선공 영당제사

2009년 영당 집례

사준

종헌관

 
 

집례 재배

음복

 

2005년 영당제사

충선영당

충선공 영당

충선공영정과 진설

 

오시는 길

☜ ①남해안고속도로(10번) 순천에서 호남고속도로(25번) 주암나들목
    ②우회전 동복쪽(22번)11km→동복에서15번 10km
    ③복암휴게소 경유 우회전 화순(22번) →광덕리에서 좌회전후 직진 남평(55번)
    ③남평역에서 2km진행후 좌회전→200m우회전 풍림리방향 1km
    ④장연서원 홍살문 옆 주차장( 차량 30여대 주차 가능함)
    ⑤시조단은 장연서원에서 300m 거리이며 주차장있다

☜ ①광주→남평(1번) 15km 진행→남평직전의 다리앞에서 좌회전(55)1.5km
    ②우회전 200m 진행 우회전→ 풍림리방향 1km →홍살문 앞에 주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