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숙공 고간원

 충숙공 문극겸 고간원 (忠肅公 文克謙 叩諫院)

❏ 소재지      - 충남 공주시 유구면 추계리
❏ 문화재      - 충남지방 문화재 제51호
❏ 배향선조   - 3세 충숙공 문극겸
❏ 제향일      - 음력 10월 1일 11:00

고간원은 충숙공 휘 극겸(克謙) 선조님 유적지입니다. 현존하는 남평문씨 묘소 중 가장 오래된 묘소인 충숙공 묘소를 중심으로 고간원지, 충숙공 신도비와 재실- 금강재, 고간정사, 충숙공영당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 휘諱란 돌아가신 분의 존칭으로 이름 앞에 붙여 사용)

충숙공이 왕께 충간하다 미움을 받아 벼슬에서 물러나 귀향하던 중 머무르셨으며 묘소가 있는 이곳 유구에 세운 사당이 고간원입니다. 고간(叩諫-말을 끌어 당겨 멈추게 한다는 뜻)은 충숙공이 왕에게 한 충간을 말고삐 끌어당기며 간하던(叩馬而諫) 중국 은나라 백이(伯夷) 숙제(叔齊) 형제의 충간(忠諫)에 견주어 유래된 이름입니다.

충숙공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효(孝)를 실천하였고, 국가의 안위를 염려하였으니, 고간원은 충효사상(忠孝思想)과 보국안민(輪國安民) 사상의 도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매년 음력 10월 1일 전국에서 많은 일가들이 참여하여 묘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 고간원에 대한 또 다른 정보를 문씨개요 – 재실소개 – 고간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충숙공 문극겸 영정


충숙공 묘소 - 현존하는 남평문씨 묘소중 가장 오래된 묘소






▣ 고간원(叩諫院) 안내문

고간원은 충숙공(忠肅公) 문극겸(文克謙) 선생의 묘소가 있는 터에 지어진 원사(院祠)로서 영정을 봉안한 영당(影堂)이며, 정문의 이름은 망일(望日)이라 한다. 고간은 말고삐를 끌어당기며 간하던(叩馬而諫) 백이(伯夷) 숙제(叔齊)의 충간(忠諫)에 견주어 유래된 이름이고, 망일은 임금을 향한 충성심이 빛난다는 뜻에서 취한 이름이다.

충숙공께서 백성을 돌보지 않는 왕(의종)에게 상소문을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불태우자 관복을 벗고 귀향 도중 유구역(維鳩驛) 벽에다 마음에 품은 충절의 시를 썼다. 뒤에 역을 수리할 때 그 내용이 화공에 의해 벽화로 그려지고, 그림을 본 여러 과객(過客)들이 찬탄하는 시를 남겼으며, 차운시(次韻詩)가 뒤를 이어 유명해졌는데, 묘소로 인해 마을 이름도 고간동(叩諫洞)이라 불려졌다.

고간원은 조선 태종의 명으로 옛터에 세워졌으나, 임자년 홍수에 원사(院舍)가 허물어지고 원판(院板)이 표류하자 유구역 근처의 주민들이 제액(題額)을 인양하여 유구역에 두었다.
그 후 공주목사 곽간(郭趕)은 충간의 사실을 듣고 감탄하며 현판을 걸도록 하였는데, 선조 23년(1590) 진사 이치림(李致霖)이 고간원기(叩諫院記)를 지었다. 임진왜란 중에 불타버리자 다시 건물을 짓고 광해군 9년(1617) 생원 최진명(崔振溟)이 고간원중수기(叩諫院重修記)를 지어 걸었다.

철종 2년(1851) 후손들이 현판을 수습하여 고간원을 중건하였고, 순종 1년(1907) 중수하던 중 자금이 모자라 1914년 2간(間)으로 줄여 공사를 완료하면서 현판을 교체하였다. 1989년 고간원 건물이 낡고 협소하여 별사(別舍)로 충숙영당과 고간정사(叩諫精舍)를 금강재(金岡齋) 뒤에다 신축하였다. 고간원지(叩諫院址)는 충청남도 지방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었다.

남평문씨 대종회 충숙공 유적보존위원회





2017.11.18 충숙공 묘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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